울진봉평신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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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04-0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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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왕경인으로서 小舍帝智의 京位를 가진 居伐牟羅道使 卒次와 悉支道使 烏婁次, 그리고 奈麻의 경위를 가진 悉支軍主 介夫智 등도 열거되었다.
설명
울진봉평신라비
♣봉평비에 나타나는 살우의식
고대에는 왕이 직접 희생의례를 행하였던 기록이 있는데 봉평신라비와 영일 냉수리 비에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따 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신라에서 公式 적 의식을 진행할 때 살우(殺牛 )가 매우 중요한 행사로 나타남을 볼수 있따 여기세서 소가 고대사회에서 제의적 용도로서 매우 중요하게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따 이는 부여에서 소의 발굽으로 점을 친 것과 연관되는 것으로써 그 당시 사회에서의 소의 존재와 의미를 새롭게 인식시켜 준다.
봉평비에 나오는 지명들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곳은 역시 사태가 발생한 居伐牟羅와 男?只가 되겠는데, 이들의 오늘날 위치는 봉평비가 발견된 蔚珍郡 竹…(省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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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포트/인문사회



다.
봉평비에서 보여지는 신라지방제(누리망 조사data(자료))
법흥왕 11년(524)에 세워진 蔚珍鳳坪新羅碑(이하에서 `鳳坪碑`라 약칭)에 나타난 바를 통해서 6세기 전반 단계의 군*촌과 이에 파견된 지방관의 문제를 살펴볼 수 있따봉평비는 동해안 방면에서 일어난 일종의 소요사태를 신라 중앙정부가 무력으로 진압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일련의 조치를 취한 사실을 기록한 비이다. 비문 가운데 “우마진어송사(牛馬盡於送死)”라는 표현은 부장용으로 순장했음을 보여주는데, 소의 존재가 상당히 신성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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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작성하고자 노력하였으니 만족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봉평비에 나오는 동해안 방면과 관련된 지명 및 인물에 대한 data(자료)는 당시 이 방면에 대한 편제의 實態를 파악하는데 유효한 정보로 활용될 수 있따
鳳坪碑에 의하면 居伐牟羅를 위시로 하여 男?只村*阿大兮村*葛尸組村*悉支 등의 지명들과 이와 관련된 인물들이 명기되어 있따 이중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난 곳으로 居伐牟羅와 男?只村이 가장 앞에 명기되었고, 사태의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阿大兮村과 葛尸組村도 함께 적기되었으며, 이와 함께 杖 60 혹은 杖 100의 형벌에 처해진 각 촌별 토착 책임자들의 이름도 기입되었다.